
1. 줄거리
1940년대 일제강점기 경성. 대동아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며 근근이 살아가던 까막눈 김판수는, 동료 춘삼의 배신으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아들 학비도 내지 못해 월사금을 독촉받던 그는 결국 극장에서 쫓겨났고, 궁지에 몰린 끝에 소매치기까지 손을 대게 된다. 그렇게 노린 다음 표적이 바로 조선어학회의 대표 류정환의 가방이었다.

하지만 판수의 도둑질은 그 자리에서 들켰고, 류정환은 판수의 집까지 찾아와 가방을 되찾는다. 거기에는 조선어 사전, 즉 말모이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원고가 들어 있었다. 이 작은 사건이 두 사람의 운명을 묶어버린 첫 계기가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조선어학회 심부름꾼 면접 자리에서 다시 마주한다. 글을 모르는 판수가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류정환은 그를 영 못마땅해 하지만, 동료 조 선생의 설득으로 판수는 학회의 일을 맡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아들 학비를 벌기 위한 일 정도로 생각했지만, 사전을 만들겠다는 조선어학회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에 자연스럽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판수는 인쇄소에 원고를 맡기러 가던 길에 춘삼과 마주친다. 이번엔 친일파 앞잡이가 된 춘삼이 조선어학회 회원 임동익을 잔혹하게 폭행하고 있었고, 판수는 그를 말리다 결국 인쇄소에 가지 못한다. 뒤늦게 이를 오해한 류정환에게 인쇄비 횡령자로 몰리지만, 임동익의 증언으로 판수의 진심이 드러나고, 두 사람의 관계도 조금씩 풀린다. 이 일을 계기로 류정환은 판수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판수는 그동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글자를 배우며 오히려 즐거움을 느낀다.

한편 조선어학회는 전국의 사투리를 모으는 데 난관에 부딪힌다. 이때 판수가 기발한 발상을 내놓는다. 과거 감옥 동기였던 14명의 친구들을 불러 각 지역의 사투리를 모으게 하는 방법이었다. 이들이 합류하면서 사전 편찬은 활기를 띠지만, 일제의 감시는 점점 강해진다.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학회의 활동 자체가 위험에 처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내부 배신자 우철의 밀고였다. 일본 경찰은 학회를 덮치고, 조 선생을 잡아 고문하며 사전 원고의 행방을 캐묻는다. 류정환은 친일파 아버지의 힘을 이용해 조 선생을 구하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지키겠다는 명목으로 오히려 조 선생을 외면한다. 조 선생은 끝내 고문 후 숨을 거두지만, 그가 미리 옮겨둔 원고 덕분에 희망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류정환은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공청회를 열어 조선어 사전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려는 계획이었다.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웠던 동료들은 반대하지만, 결국 그 곁에 남은 건 류정환과 판수뿐이었다. 판수는 가족의 안전 때문에 학회를 떠나 극장으로 돌아가 보지만, 마음 한 편의 무거운 짐을 떨칠 수가 없다.
결국 그는 돌아온다. 감옥 동기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은 기적처럼 경성역 창고에 숨겨져 있던 전국의 사투리 편지들을 발견한다. 일제의 눈을 피해 누군가가 목숨 걸고 보냈던 언어의 조각들이었다. 판수는 그 편지들을 들고 류정환과 마지막 공청회로 향하고, 두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우리말 사전을 세상에 남긴다. 그렇게 말모이, 우리말을 모으는 일은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다.
2. 명대사
영화 속 대사는 단순한 대사 전달이 아니라 당시 시대의 공기, 그 안에서 버텨야 했던 사람들의 숨결을 전해준다.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네 놈의 한 발자국이 더 낫지 않겠어?
- 김판수 -
이 대사는 판수라는 인물이 가진 순박함과 현실적인 지혜가 동시에 드러나는 말이었다. 그는 배운 것도 변변치 않고, 사회가 인정해주는 위치도 없지만, 대신 사람을 모으고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사람 한 명이 미친 듯 뛰어봐야 결국 그 길은 한 사람의 발자국일 뿐이고, 여럿이 함께하면 비록 느리고 투박해도 훨씬 먼 길을 갈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이 대사가 좋았던 이유는 전문가나 영웅이 아니어도 보통 사람이 힘을 보태면 역사가 바뀔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백하게 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대를 버텼던 건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손발 걷고 부딪힌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걸 판수가 대신 말해준 셈이었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
- 류정환 -
영화 전체의 방향을 잡아주는 문장처럼 느껴졌고 류정환은 언어를 도구가 아니라 정체성과 기억의 저장소로 바라봤다.
말과 글이 없다면 민족은 생각을 기록하지 못하고, 감정을 나누지 못하고, 결국 자신들이 누구인지조차 잊힌다는 것이었다.
거창한 외침이 아니라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시대의 절박함에서 비롯된 문장이어서 더 울림이 컸다. 조국이 없어질까 두려웠던 사람들이 그래도 말만큼은 지키고 싶어서 버텼던 이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한글을 모를 땐 내 아들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웠어.
- 김판수 -
이 대사는 시대의 고통보다 더 현실적인,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낸것 같다. 판수는 글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아들과 소통할 자신이 없었고 언젠가 들킬까 봐, 무시당할까 봐, 그 작은 존재가 제일 무서웠다고 고백한 것 같다.
글은 그저 글일 뿐이오. 글자를 짓는 것은 사람이고, 그 글자를 쓰는 것도 사람이고,
그 글자로 마음을 전하는 것도 사람이오.
- 조 선생 -
조 선생의 이 말은 한글 자체보다 그 글을 통해 마음을 전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더 소중하다는 뜻이었다. 한글을 지킨다는 목표가 무겁게 들릴 때 조 선생은 방향을 돌려서 사람의 마음이 먼저다라고 말해주었다.
이 대사는 판수에게도, 관객에게도 글을 모르면 부끄럽다는 열등감이 아니라 글을 배우면 누구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것같다. 그래서 이 대사는 엄숙한 교훈보다 사람 냄새가 나는 격려에 가까운 대사라고 생각한다.
말을 잃으면 혼을 잃는 것이고, 혼을 잃으면 민족도 사라집니다.
- 류정환 -
이 대사는 앞선 대사를 확장한 마지막 경고 같았다. 당시 일본은 조선어 금지 정책으로 민족성 자체를 제거하려 했었다.
혈통이나 땅보다 먼저 무너지는 건 기억과 언어이고 그걸 잃으면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잊는다는 뜻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 대사는 감정적인 슬로건이 아니라 침묵이 곧 소멸이라는 냉정한 자각을 담고 있다. 그래서 류정환의 목소리는 설득을 넘어 오히려 살아남아야 한다는 선언이라고 느껴졌다.
나는 우리말이 제일 좋아. 왜냐하면 우리말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니까.
- 김판수 아들 -
영화 속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말이었다. 어린아이가 이유 없이 내뱉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라 일본어를 강제로 배워야 하는 교실 속에서 튀어나온 조용한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현실적인 선택을 고민하지만 아이에게는 가장 솔직한 감정이 좋으니까 좋은 것이 남아 있었다고 느껴졌다.
말모이, 우리말을 모은다는 뜻이오. 우리말을 모아 세상에 보이고 싶었소.
- 조 선생 -
영화의 제목을 넘어 운동의 목적이자 소망이었다. 그저 사전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 작업이 아니라 흩어진 사람들의 언어를 모아서 역사 앞에 증거로 내놓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 대사는 영화를 본 뒤에도 꽤 오래 마음에 남는다.
3. 관람평
영화 말모이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마음을 뜨겁게 흔드는 작품이었다. 역사를 다루는 영화가 보통 사실을 나열하거나 감정의 무게만 던지는 방식으로 흐르곤 하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딱딱한 설명 대신 사람의 표정과 숨, 실감 나는 일상과 소소한 웃음을 통해 그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전달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인 내가 어느새 화면 속 사람들과 같이 어깨를 움츠리고, 같이 조마조마한 숨을 내쉬고, 같이 희망을 붙잡게 됐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우리가 매일 아무렇지 않게 쓰는 한글을 단순한 문자로 보지 않는다. 한 시대의 사람들, 삶의 자존감, 사랑, 자식에게 전하고 싶은 말까지 모든 것이 언어에 담겨 있었다는 사실을 차근차근 깨닫게 한다. 그래서 영화가 끝날 때면, "말을 지킨다는 게 이렇게 거대한 일인가?" 하고 스스로 되묻게 된다.
연기 앙상블도 정말 훌륭한 영화였다. 유해진은 김판수라는 인물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흡수했고, 익살스러운 표정 뒤에 숨어 있는 글을 모르는 부끄러움, 아버지로서의 초조함, 그래도 재미를 느끼는 배움의 기쁨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단지 웃음을 주는 배우가 아니라, 사람 성장의 서사를 몸으로 보여주는 배우라는 걸 다시 느꼈다. 어느 순간부터 판수의 변화가 응원이 아니라 내 가족의 일처럼 다가왔다.
윤계상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결을 맡아 극을 단단하게 붙잡았다.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의 고뇌, 책임감, 민족적 자의식, 그리고 친일파 아버지와 얽힌 복잡한 감정을 과장 없이 섬세하게 끌고 간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말보다 깊은 속내가 느껴져서, 괜히 그의 조용한 분노를 따라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말모이의 감동은 두 배우에게만 머물지 않는다. 사전 편찬에 참여했던 조선어학회 동료들, 사투리를 모으기 위해 몸을 내던지던 판수의 감옥 동기들, 그리고 이름 없이 편지를 보냈던 무수한 민초들...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쌓아 올린 결과물을 보여주는 영화다. 누군가의 열정이 아니라,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손과 발의 누적이 결국 말 하나를 지켰다는 사실이 깊은 울림을 만든다.
경성역 창고에서 발견되는 편지 더미를 바라보는 장면은, 시대극의 클라이맥스보다 오히려 더 큰 감정의 파도가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편지 한 통마다, 이름 하나마다, 조선인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남긴 말의 조각, 기억의 단서, 혹은 유언 같은 문장이 숨어 있었다. 그래서 그 순간엔 영화 속 인물들이 아니라 실제 조선 사람들의 방언과 눈물이 내 눈앞에 쌓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영화는 절망도 숨기지 않았다. 고문, 밀정, 탄압, 배신, 사형 선고, 언어 말살...
그 음산한 시대의 구조를 과장 없이 그리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 영화가 택한 방향은 비관이 아니라 생존, 패배가 아니라 축적, 절규가 아니라 전승이다. 이 영화는 절망을 보여주고, 그 절망을 이겨내는 사람들의 힘을 보여주고, 결국 희망이 남는 지점을 끌어올렸다.
그래서 말모이는 교육용 영화나 도덕적 메시지를 강요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관객이 스스로 깨닫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빼앗기면 생각이 흔들리고, 생각이 흔들리면 사람이 흔들린다. 단순하지만 꽤 무서운 사실이고 역사적으로 증명된 내용이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길 나는 잠시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를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손가락 아래 놓인 한글이라는 도구가 누군가에게는 목숨 값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일상 속에서 둔감해진 이 언어가 누군가에게는 신념이었고, 숨통이었고,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그래서 말모이는 재미를 넘어 역사를 머리가 아니라 심장으로 받아들이게 만든 경험이었다. 한글을 사용하는 민족으로서 우리가 무엇을 지켜왔는지, 그 지킴이들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시간이었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3점을 준다.
시간이 지나도 의미가 줄어들지 않는 영화 오히려 지금의 우리에게 더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