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깊은 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비밀 실험실...
어린 여자아이가 사력을 다해 그곳을 탈출하고 있었다. 뒤를 쫓는 사람들을 간신히 따돌린 아이는 결국 총탄에 머리를 맞고 쓰러지고, 한 농가 부부에 의해 발견된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날의 기억을 모두 잃은 아이는 자윤이라는 이름으로 그 집의 딸이 되어 평범한 시골 소녀로 자라게 된다.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저 평온한 나날을 보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자윤의 머릿속, 깊은 곳에 감춰져 있던 진실은 점점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뇌 기능을 억제하던 약물의 부작용이 나타나며, 견디기 힘든 두통이 그녀를 괴롭힌다. 병원에서는 친부모를 찾아 골수이식을 받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말까지 들은 상황. 부모님의 치료비와 소 사료값까지 걱정해야 하는 자윤은 친구 명희와 함께 상금이 걸린 TV 오디션에 나가기로 결심한다.

자윤은 무대 위에서 믿기 어려운 마술 같은 능력을 보여주며 손쉽게 1등을 차지한다. 하지만 이 방송이 나가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TV 화면 속 자윤을 본 미스터 최와 닥터 백은, 오래전 실험실에서 탈주한 그 아이가 바로 자윤이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방송 이후, PD는 예선전에서 보여줬던 묘기를 다시 한번 방송에서 보여달라고 요구하고, 자윤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 후 더 심해진 두통과 함께 코피까지 쏟으며 쓰러지는 자윤. 이전에 들었던 "친부모를 찾아야 한다"는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탄 기차역, 자윤과 명희 앞에 수상한 남자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명함을 내밀며 자윤을 차에 태우려 하고, 분위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진다. 명희의 눈치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는 넘기지만, 그들의 추격은 끝나지 않는다. 마을 근처까지 따라온 그들은 자윤의 부모를 언급하며 불길한 협박을 남기고, 겁에 질린 명희는 경찰인 아버지에게 급히 도움을 요청한다.
집에 도착한 자윤은 부모님과 명희 아버지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잠깐 안도하지만, 그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괴한들이 집 안으로 들이닥치며 모두를 위협하고, 명희를 인질로 삼은 채 자윤에게 총을 겨눈다. 바로 그 순간, 자윤의 눈빛이 완전히 달라진다.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난 듯, 자윤은 괴한들을 순식간에 제압해 버린다. 피범벅이 된 손을 바라보며 스스로도 놀라는 자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공포에 떨게 되는 명희.

그때 기차에서 처음 마주쳤던 남자가 다시 등장한다. 그는 차분한 얼굴로 자윤에게 말한다.
"이제 그만 연기하고, 같이 가자."
거절하면 자윤과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덧붙이며, 선택권 따위는 주지 않는다. 결국 자윤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지키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기로 한다.

연구소로 끌려간 자윤은 닥터 백과 다시 마주한다. 닥터 백은 자신이 자윤을 만든 사람이라고 말하며,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게 해주겠다고 한다. 곧바로 자윤의 목에 특수 약물을 주입하자, 실험체였던 과거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닥터 백은 자신을 "엄마"라 부르라 강요하지만, 자윤에게 그녀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살인자에 불과하다. 닥터 백은 자윤에게, 능력을 무리하게 사용하면 자윤의 뇌가 버티지 못하고 죽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오직 자신만이 자윤을 살릴 수 있다며, 또 다른 약물을 주입한다.
이번 약물은 자윤의 뇌를 억누르던 장치를 걷어내며,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쓸 수 있게 해주는 대신 유효기간은 단 한 달. 한 달 안에 다시 약을 맞지 않으면 끔찍한 고통과 함께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과연 자윤은 닥터 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진짜 자유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2. 명대사
마녀 속 대사들은 단순한 멋진 한 줄을 넘어서, 인물들의 정체성과 반전의 순간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특히 평범한 시골 소녀로 보이던 자윤이 본모습을 드러낼 때의 대사들은 소름이 돋을 만큼 인상적이다.
내가 아니라고 했지?
-자윤 -
집에 난입한 괴한들이 명희를 붙잡고 자윤을 몰아붙일 때, 자윤이 차갑게 내뱉는 한마디다. 그전까지는 힘없는 피해자처럼 보였던 자윤이, 순식간에 분위기를 뒤집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말과 함께 자윤의 태도와 표정이 완전히 바뀌면서, 관객은 그녀가 단순한 착한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이 대사를 기점으로 영화의 장르는 거의 다른 영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급격히 변한다.
안녕? 마녀아가씨
- 귀공자 -
기차 안에서 처음 자윤에게 건넸던 인사. 언뜻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자윤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선언과도 같은 말이다. 귀공자는 처음부터 자윤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이 한 문장으로 이후 계속 이어질 불안감과 긴장감을 심어준다. 짧지만 강렬한 이 대사는, 자윤과 귀공자의 관계가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님을 암시한다.
네가 우리를 버렸어, 자윤아.
- 귀공자 -
자윤을 찾아낸 뒤, 귀공자가 과거를 끄집어내며 던지는 말이다. 그는 자윤이 진짜로 기억을 잃었다고 믿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들을 배신하고 혼자만 평범한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며 분노한다. 이 대사는 두 사람이 단순한 추격자와 표적이 아니라, 한때 같은 편이었음을 암시하며 이야기의 미스터리를 한층 짙게 만든다.
난 이미 다 준비해 놨어. 이제 와서 연기 그만해.
- 자윤 -
모든 퍼즐이 맞춰진 뒤, 연구소에서 자윤이 귀공자에게 내뱉는 대사다. 지금까지 우리가 봐왔던 겁먹은 피해자 자윤이 사실은 치밀하게 모든 상황을 준비해 온 설계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한마디로, 자윤이 기억을 잃은 피해자가 아니라, 능력을 회복하고 부모를 지키기 위해 판을 짜왔던 존재임이 밝혀진다. 관객 입장에서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소름이 돋는 반전 포인트다.
그럼 제가 한번 해볼게요. 아줌마가 만든 거, 얼마나 강한지.
- 자윤 -
닥터 백이 너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 자윤이 조용히 던지는 대사다. 더 이상 자신을 실험체 취급하는 닥터 백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자신을 만든 사람의 통제에서 벗어나, 그 힘을 온전히 자기 의지대로 쓰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말 그대로, 진짜 마녀로 거듭나는 순간의 선언문 같은 대사다.
이건 엄마, 이건 아빠.
- 자윤 -
클라이맥스 이후, 자윤이 연구소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차갑게 말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자신을 길러준 부모를 떠올리며, 그들을 해치려 했던 인간들을 차례로 처리하는 이 장면은 자윤의 감정선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잔혹하고, 또 한편으로는 왜곡된 방식의 효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대사는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남기는 강한 여운을 준다.
3. 관람평
처음 마녀라는 제목과 신인 배우 라인업을 봤을 때만 해도,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적당히 피 좀 튀기고 끝나는 액션 영화겠지" 정도로 생각하며 극장에 들어갔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생각은 완전히 깨져버렸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줬다.
내가 특히 빠져들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번째로 김다미라는 배우의 발견.
영화 초반부의 자윤은 소소한 농장 일을 돕고, 친구와 장난치며, 아픈 부모를 걱정하는 순박한 시골 소녀 그 자체다. 관객이 완전히 방심하는 구간이다. 그런데 중반부, 눈빛이 바뀌는 그 순간부터 분위기가 뒤집힌다. 같은 얼굴인데,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순진함에서 냉혹함으로, 피해자에서 사냥꾼으로, 김다미는 두 얼굴을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넘나 든다. 대사보다 눈빛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하는데, 이게 신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말 그대로 마녀라는 타이틀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느낌이었다.
두 번째로 예측이 안 되는 이야기.
영화를 많이 보다 보면, 웬만한 반전은 슬슬 패턴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마녀는 그런 예측을 계속 비껴간다. 처음에는 "아, 초능력 실험체 출신 소녀 이야기겠구나" 정도로 가닥을 잡게 되지만, 갈수록 인물들의 관계와 의도가 꼬여 들어가면서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특히 엔딩에 가까워질수록 드러나는 진실들... 자윤이 사실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었고, 스스로 상황을 설계해 왔다는 점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추리를 통째로 갈아엎는다. 단순히 강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아닌, 철저히 계산하고 움직여 온 플레이어라는 점이 이 영화의 핵심 매력이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초능력 액션이라기보다, 한 소녀의 잔혹하고 냉정한 복수극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최우식 배우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전까지는 다정하거나 코믹한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귀공자라는 캐릭터는 겉은 가볍고 여유로운 척해도, 속에는 잔혹함과 광기가 도사리고 있다. 이 양면성을 최우식이 참 매끄럽게 표현해 낸다. 자윤과 마주하는 장면들은 두 배우의 팽팽한 긴장감 덕분에 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다.
연출 역시 돋보인다. 박훈정 감독은 이미 신세계로 실력을 증명했지만, 마녀를 통해 다시 한 번 장르 잘 아는 감독이라는 걸 보여준다. 화면 구성, 색감, 편집 리듬까지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과하지 않게 조율되어 있다. 후반부 액션 시퀀스들은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데도, 단순한 잔인함을 넘어서 묘하게 미학적인 느낌까지 준다. "잔혹한데 눈을 뗄 수 없는" 타입의 액션이다.
마녀는 결코 단순한 킬링타임용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배우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자, 한국 상업영화 시장에 꽤 강렬한 자국을 남긴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로 김다미라는 보석 같은 배우를 알게 되었고, 박훈정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게 되었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한 번쯤은 꼭 경험해보길 권하고 싶다.
기대치를 낮추고 보러 갔다가, 그 기대를 아주 시원하게 배신당하는 즐거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1점으로 충분히 강렬하고, 충분히 새로웠던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