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엘과 리는 태어난 날부터 한 몸처럼 붙어 다니던 찐친이었다. 서로의 집을 자기 집처럼 드나들며, 가족과 친구의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어린 시절 엘의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리의 가족이 엘을 품어주며 진짜 가족 같은 유대를 이어왔다. 그렇게 함께 자라던 둘은 우정을 지키기 위해 ‘절대 깨지 말아야 할 규칙들’을 만들었고, 그중 가장 중요한 아홉 번째 규칙은 바로 “베프의 가족은 건드리지 않는다”였다.

문제는 엘이 그 규칙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마음을 품으면서 시작된다. 엘은 리의 형이자 학교에서 가장 인기 많은 노아 플린을 오랫동안 몰래 좋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룰 때문에 그 감정을 혼자 삭여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등교한 엘이 투펜에게 기습적으로 추행을 당할 뻔하고, 그 순간 노아가 나타나 주먹 한 방으로 상황을 끝내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아는 엘에게 조금씩 특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엘 역시 마음이 점점 더 흔들린다.

학교 축제에서 키싱 부스를 만들기로 한 엘과 리는 행사 흥행을 위해 노아를 참여시키자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설득하기 위해 노아의 집 파티에 가게 되고, 잔뜩 취한 엘은 오엠지걸에게 노아가 키싱 부스에 나올 거라는 말에, 그들 중 한 명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거짓말까지 덧붙이고 만다. 결국 축제 당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아가 부스에 등장하고, 그 자리에서 엘에게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다.

그날 밤, 노아는 엘을 오토바이에 태워 데려다주는 길에 갑작스러운 비를 만나고, 둘은 근처 오두막에서 비를 피한다. 그곳에서 노아는 다시 엘에게 키스하지만, 엘은 “나를 다른 여자애들처럼 가볍게 보지 말라”라고 밀어낸다. 오히려 그 솔직함과 단단함에 노아는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고, 두 사람은 결국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둘의 연애는 리에게 비밀로 한 채 시작된 터라, 늘 아슬아슬했다. 엘은 리에게 거짓말을 반복하는 자신이 부담스럽고 미안하면서도, 노아와 함께일 때는 너무 행복했다. 그러던 중, 리가 우연히 두 사람의 사이를 알게 되면서 상황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배신감에 휩싸인 리, 그리고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엘. 엘은 과연 오랜 우정과 새로 얻은 사랑, 둘 다 지켜낼 수 있을까?
2. 명대사
키싱부스는 전형적인 하이틴 로맨스이면서도, 사랑과 우정에 대해 한 번쯤 곱씹어 보게 만드는 대사들이 꽤 많았다. 그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몇 가지를 골라보면 다음과 같다.
포기하지 마. 인생에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거야.
- 플린 부인 -
어릴 적 엘과 리가 사소한 일로 틀어질 위기에 놓였을 때, 리의 엄마이자 엘에게는 제2의 엄마 같은 존재였던 플린 부인이 해준 말이다. 짧지만, 우정의 가치를 너무 잘 정의한 문장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진짜 친구를 한 명 만나기도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이 말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
형은 원하는 걸 다 얻었어. 형이 내게서 유일하게 가져가지 못한 게 너였다고.
- 리 플린 -
리에게 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짝이었다. 그런 엘이 형 노아와 몰래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리는 노아에게 그동안 쌓였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이 말을 던진다. 항상 형에게 밀린 듯한 동생의 서운함과, 엘을 지키고 싶었던 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대사다. 형제 사이의 질투, 열등감, 그리고 애정이 모두 섞여 있는 복잡한 감정이 짧은 문장으로 잘 표현됐다.
너에게 사랑에 빠지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야.
- 노아 플린 -
여자들에게 늘 인기가 많았고, 대충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연애에 익숙했던 노아. 그런 그가 엘을 향해 내뱉은 이 고백은, 그동안과는 다른 진심 어린 감정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비 내리던 오두막에서, 장난이 아닌 진짜 마음을 담아 건넨 이 말은 노아의 감정 변화와 성장을 보여주는 중요한 포인트였다.
이게 전부야, 엘. 이게 우리가 원하는 삶이라고.
- 노아 플린 -
남들 눈을 피해 몰래 데이트를 즐기던 어느 날, 노아가 엘에게 속삭인 말이다. 화려한 곳도, 거창한 이벤트도 아니지만, 엘과 함께 있는 이 순간들이 자신이 꿈꾸던 삶이라는 고백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비밀스러운 연애가 단순한 스릴을 넘어, 서로에게 진짜 안식이 되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대사였다.
나는 내 삶을 내가 선택할 거야.
- 엘 에반스 -
영화 후반, 엘은 리와의 평생 우정, 그리고 노아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때 떠올린 것은, 리의 어머니가 생전에 엘에게 해줬던 "네 인생은 네가 선택하라"는 조언이었다. 결국 엘은 누가 정해준 답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향하는 선택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 대사는 단순한 연애 문제를 넘어, 엘이라는 인물이 수동적인 아이에서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 관람평
넷플릭스에서 키싱부스를 처음 본 건, 짧은 클립이 SNS 피드에 계속 떠서였다. 예전에 하이스쿨 뮤지컬 같은 하이틴 영화를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있어서, 비슷한 감성을 기대하며 가볍게 재생 버튼을 눌렀다. 결과적으로, “전형적인 하이틴 로코”라는 예상은 그대로였지만, 그래서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사실 클리셰 덩어리다. 금지된 사랑, 절친과의 갈등, 인기 많고 완벽한 남주, 비밀 연애 어디선가 한 번쯤 본 설정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은 건, 그 익숙함 자체가 주는 설렘과 위로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엘과 리의 우정, 엘과 노아의 애매하고 아슬아슬한 관계를 보고 있자면, 자연스럽게 내 학창 시절의 감정들이 떠오른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키싱 부스라는 장치였다. 학교 축제에서 있을 법한 단순한 이벤트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감정이 본격적으로 뒤엉기고 드러나는 핵심 계기가 된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노아가 부스로 걸어 나와 엘에게 키스하는 장면은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심장이 쿵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그만큼 배우들의 케미와 연기력이 이 장면을 잘 살려줬다고 느꼈다. 조이 킹, 조엘 코트니, 제이콥 엘로디 모두 하이틴 로맨스 특유의 분위기를 정말 잘 표현했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다. 전개가 다소 급하게 느껴지는 구간도 있고, 현실적으로 보기엔 무리수 같은 설정도 많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진지한 사회 메시지를 던지려는 작품이라기보다는, 그냥 기분 좋게 웃고 설레고 지나갈 수 있는 영화에 가깝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단점마저도 어느 정도는 용서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2000년대 중후반에 극장 개봉을 했다면 하이스쿨 뮤지컬 못지않게 크게 히트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 시절 감성과 딱 맞는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 저녁, 머리 비우고 보기 딱 좋은 킬링 타임용 영화였고, 이걸 계기로 시리즈 후속작까지 한 번에 정주행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키싱부스는 어릴 적 친구와의 우정에 대해서도 은근히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거창한 인생철학을 던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보고 난 뒤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그런 작품이었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4점이다. 적당히 설레고, 적당히 웃고, 살짝 옛날 감성까지 불러오는 기분 좋은 하이틴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