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경찰 조직 내에서도 최정예로 꼽히는 내사과 소속 은시연 경위는 F1 레이서 출신이자 통제 불능의 사업가 정재철을 집요하게 추적해 왔다. 수사 과정에서 그녀의 편에 서 있던 사람은 윤 과장 단 한 명뿐이었다. 정재철은 온갖 불법과 비리를 저지르면서도 늘 법의 경계를 교묘히 피해 다녔고, 그의 수하들은 경찰의 강도 높은 취조에도 입을 열지 않기 위해 자해까지 감행할 만큼 맹목적인 충성을 보였다.
결국 정재철을 비호하던 거대한 권력에 의해 내사과는 해체되고, 은시연은 강압 수사라는 누명을 쓴 채 경찰 조직에서 가장 한직으로 꼽히는 뺑소니 전담반, 이른바 뺑반으로 좌천된다.

뺑반은 경찰 내부에서도 존재감이 거의 없는 부서였다. 만삭의 몸으로 팀을 이끄는 우 계장, 차량에 대한 감각만큼은 천재적인 순경 서민재, 그리고 좌천된 엘리트 경찰 은시연까지, 단 세 명이 전부였다.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했던 시연은 이곳에서 민재를 만나며 다시 한번 수사의 방향을 되찾게 된다.
민재는 과학 수사나 복잡한 절차보다는 오직 자신의 감과 직관을 믿고 움직이는 형사였다. 처음에는 그의 방식이 비합리적으로 느껴졌던 시연도, 민재의 감각이 번번이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모습을 보며 점차 신뢰를 쌓아간다.

그러던 중 제이씨 모터스에서 접수된 뺑소니 신고가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수상한 상황을 놓치지 않은 시연은 사건의 배후에 정재철이 있음을 직감하고, 과거 함께 그를 추적했던 검사 기태호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정재철이 주최한 제이씨 모터스 파티에 잠입해 그의 동향을 살피고 도청을 시도하지만, 그곳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그의 잔혹한 본성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정재철은 자신과 같은 차를 타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커플의 차량을 골프채로 부수고, 과거의 친구에게 헬멧을 씌운 채 드릴로 위협하는 등 통제 불능의 광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이 장면을 통해 시연은 그가 반드시 잡아야 할 범죄자라는 확신을 굳힌다.

한편 뺑반은 또 다른 뺑소니 사건을 수사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한다. 민재는 사고 현장 인근에서 정재철이 수상한 제보자에게 돈을 건네는 모습을 포착하고 차량 사진까지 확보한다. 그러나 정재철은 해당 사고가 뺑소니가 아니라 자신의 서킷에서 발생한 단순 사고라고 주장한다. 사고 장소를 말해주지 않았는데도 서킷이라는 단어를 꺼낸 그의 말에 의문을 품은 시연과 민재는, 그가 과거의 또 다른 뺑소니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된다.
수사가 진전되며 민재의 과거도 드러난다. 한때 마약과 폭주에 빠져 방황하던 그는, 아버지를 뺑소니 사고로 잃은 뒤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 경찰이 된 이후 그는 오직 뺑소니범을 잡는 일에 모든 것을 바쳐왔고, 그 모든 비극의 중심에 정재철이 있었다는 사실은 민재를 분노로 몰아넣는다.

모든 증거가 정재철을 향하자, 그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다. 직접 레이싱카를 몰고 도주하며 경찰을 조롱하듯 질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추격전은 정재철이 치밀하게 설계한 함정이었다. 그는 시연을 미끼로 삼아 민재의 아버지가 타고 있던 구급차와 충돌을 유도하고, 결국 폭발로 인해 민재의 아버지는 목숨을 잃고 만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시연과 민재는 이제 더 이상 법과 절차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오직 정재철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불법 레이싱 현장에 뛰어들고, 목숨을 건 최후의 추격전을 벌인다. 뺑반의 활약으로 그의 비리와 비호 세력은 세상에 드러나지만, 정재철은 끝까지 도망치려 발버둥친다.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며, 정의와 광기의 정면충돌을 보여준다.
2. 명대사
이건 운전이 아니라 경주잖아!
- 은시연 -
이 대사는 정재철의 질주를 바라보며 은시연이 처음으로 그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순간이다. 법을 피해 도망치는 행위조차 그에게는 생존을 건 게임이 아니라, 단순한 레이스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장면이다. 경찰과 범죄자의 대립이 아니라, 목숨을 장난처럼 소비하는 인간과 그것을 막아야 하는 사람의 충돌이라는 점을 명확히 드러낸다.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어? 법? 그거 내 장난감이야.
- 정재철 -
정재철이라는 인물을 가장 선명하게 설명하는 대사다. 그는 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법을 자신이 가지고 노는 도구쯤으로 여긴다. 이 한마디에는 돈과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 정의에 대한 냉소와, 그 구조를 누구보다 잘 알고 악용하는 인물의 오만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너 같은 쓰레기 때문에 아빠가 죽은 거야!
- 서민재 -
이 대사는 분노의 폭발이자, 민재라는 인물이 뺑반에 남아 있는 이유 그 자체다. 단순한 욕설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죄책감과 상실감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절규다. 이 한마디로 민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왜 끝까지 정재철을 쫓을 수밖에 없는지가 명확해진다.
아무리 감이 좋아도 증거 없으면 끝이야.
- 기태호 -
냉정하지만 현실적인 말이다. 이 대사는 감정과 정의감만으로는 악을 처벌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일깨운다. 기태호는 정의를 포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냉혹해져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가장 또렷하게 드러내는 대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뺑반이야, 뺑소니 잡는 전담반.
- 우 계장 -
좌천된 부서라는 자조적인 현실 속에서도, 우 계장은 자신의 역할을 잊지 않는다. 이 대사는 뺑반이 단순한 낙오자들의 집합이 아니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맡은 팀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작지만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속도만큼 정직한 건 없어. 오직 실력만이 말해주지.
- 정재철 -
정재철에게 속도는 진실이자 신념이다. 그는 레이싱의 세계에서는 거짓도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현실에서는 얼마나 비겁한 수단으로 살아왔는지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스스로를 정직하다고 믿는 가장 위험한 유형의 인간을 보여준다.
세상에 정의는 없어. 있는 건 힘과 돈뿐이지.
- 정재철 -
정재철의 왜곡된 세계관이 응축된 말이다. 그는 정의가 무너진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을 이용해 성공했다고 믿는다. 이 대사는 그가 끝내 변화하지 않을 인물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영화 전체가 던지는 가장 불편한 질문이기도 하다.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서 형사님.
- 은시연 -
이 대사에는 자존심을 내려놓은 엘리트 경찰의 진심이 담겨 있다. 시연은 이 순간 민재를 부하나 후배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한다. 복수를 위한 부탁이자, 정의를 함께 짊어지자는 연대의 선언처럼 들린다.
사람 목숨이 장난이야?
- 은시연 -
정재철의 광기 앞에서 터져 나온 이 한마디는 영화의 도덕적 중심을 상징한다. 이 말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숫자나 결과로만 여기는 태도에 대한 강력한 거부다. 시연이라는 인물이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 이유가 이 대사에 담겨 있다.
내 차, 내가 폐차시킨다는데 문제 있어?
- 정재철 -
자신의 소유물 앞에서는 어떤 감정도 고려하지 않는 정재철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사다. 차를 대하는 태도는 곧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다. 이 장면은 그가 왜 생명을 그렇게 쉽게 파괴할 수 있는지를 말없이 설명해 준다.
3. 관람평
영화 뺑반은 처음부터 큰 기대를 품고 선택한 작품은 아니었다. 공효진과 조정석의 재회라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보게 된 영화였고, 솔직히 말하면 킬링타임 정도를 예상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 영화는 조정석의 연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기억될 작품이라는 점이다.
조정석이 연기한 정재철은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그는 돈과 권력, 속도에 중독된 인물이며,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괴물이다. 특히 분노할수록 말이 꼬이고 호흡이 흐트러지는 연기 디테일은, 이 캐릭터가 단순히 냉혈한이 아니라 내부에 불안과 공허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 덕분에 정재철은 평면적인 악인이 아니라, 현실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인물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조정석의 눈빛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전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능글맞고 유쾌한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지고, 대신 서늘하고 위태로운 에너지가 화면을 지배한다. 이 작품을 통해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이 얼마나 넓은지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공효진이 연기한 은시연 역시 인상 깊다. 사랑스럽고 친근한 이미지 대신, 냉정하고 단단한 경찰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의 중심축을 잡아준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끝까지 버티는 인물로 그려졌고, 이는 정재철의 광기와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조정석의 연기가 워낙 강렬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을 수 있지만, 그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영화의 균형은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다만 이 영화의 아쉬운 지점은 분명 존재한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곳곳에서 허술하게 느껴지고, 몇몇 장면은 감정의 축적 없이 급하게 넘어간다. 특히 후반부 클라이맥스는 배우들의 열연에도 불구하고, 연출 면에서는 다소 과장되고 작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뺑반은 분명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기대하기보다는, 배우들의 연기와 속도감 있는 추격전,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광기를 마주하는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0점을 주며, 조정석이라는 배우의 새로운 얼굴을 보고 싶다면, 그리고 강렬한 악역이 남기는 여운을 느끼고 싶다면 이 영화는 충분히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