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1998년, 복싱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평범한 고등학교 체육 교사로 살아가는 시헌은 학생들 사이에서 미친개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그는 본드 흡입을 시도한 학생들 머리에 본드를 잔뜩 발라버리는 등 남다른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런 파격적인 교육법 때문에 학부모들의 항의는 끊이질 않았다. 주변 교사들과 아내 일선이 걱정 반 만류 반으로 나서도, 시헌은 선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이라며 자신만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는 전국체전 예선에서 압도적으로 경기를 주도하던 복싱 유망주 윤우가 코치의 갑작스러운 기권 선언으로 허무하게 패배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 모습을 본 시헌은 참지 못하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자신 역시 88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도 편파 판정 논란에 휩싸여 온 국민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아픈 과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헌은 윤우에게 자신의 상처와 닮은 그림자를 보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무렵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힌 장동주와 복안 등을 중심으로 시헌은 복싱부를 창설한다. 교장과 아내는 앞길이 험난할 거라며 극구 반대했지만, 시헌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결국 윤우까지 설득해 복싱부에 합류시키고, 시헌은 편파 판정으로 상처받은 윤우의 마음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며 그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기 시작한다. 전국체전을 목표로 한 훈련이 이어지고, 결승에서는 과거 윤우의 발목을 잡았던 동수와 다시 맞붙는 상황이 찾아온다.

그러나 복싱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던 관행과 유착 구조는 또다시 윤우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윤우가 경기 내내 우세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판정은 또다시 불공정했다. 분노한 시헌은 강하게 항의했지만 되돌아온 건 그의 과거를 조롱하는 비아냥뿐이었다.

절망에 빠진 시헌은 결국 복싱부를 떠났고, 아이들은 그의 빈자리를 느끼며 흔들린다. 하지만 복싱부원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시헌을 찾아가 다시 함께해 달라고 진심으로 부탁한다. 과연 시헌은 아이들과 함께 다시 링 위에 설 수 있을까.
2. 명대사
영화 카운트는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한때 좌절을 겪은 이들이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특히 진선규 배우가 그려낸 시헌이라는 인물은 캐릭터를 뛰어넘어 현실에 존재할 법한 생생함을 느끼게 했다. 그의 대사 하나하나가 묵직한 펀치처럼 마음에 울림을 남겼고, 개인적으로 오래 기억에 남은 대사들을 뽑아보았다.
첫 번째는 시헌이 복싱부 아이들에게 복싱의 본질을 설명하며 건넨 말이다.
복싱이란 건, 다운됐다고 끝나는 게 아이다. 다시 일어나라고 카운트를 10초씩이나 주거든.
- 시헌 -
단순히 규칙을 설명하는 듯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삶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편파 판정으로 무너졌을 때 시헌에게 필요했던 것도 바로 이 다시 일어남이었다. 그래서 이 대사는 관객에게도 포기하지 말라는 강한 울림을 던졌다.
두 번째는 늘 금메달을 보여달라는 아들에게 시헌이 처음으로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면이다.
사실은 아빠가 금메달을 잃어버렸다. 그런데 그거를 얻다 뒀는가를 모르겠거든? 이제부터 함 잘 찾아볼게.
- 시헌 -
아들에게 금메달을 숨겨왔던 이유는 단순한 부끄러움이 아니라, 금메달이 더 이상 자랑이 아닌 상처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찾아보겠다는 말에는 이제는 과거를 피하지 않겠다는 그의 변화가 담겨 있었다.
세 번째는 시헌이 교장에게 복싱부를 만들겠다고 고집을 부릴 때의 말이다.
지 인생 걸고 할라 하는 애들인데요. 제는 그런 애들 외면 못 합니다. 몬 키우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시헌 -
복싱부 창설은 단순한 동아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기 위한 시헌의 진심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네 번째는 시헌의 아내가 건넨 위로의 말이다.
이제 와서 뒤돌아볼 거 뭐 있노. 니 하고 싶은 거, 니 맘대로 다 해라. 내가 있잖아.
- 시헌 아내 -
남편의 좌절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내의 말은 시헌을 다시 일어서게 한 든든한 응원이자 버팀목이었다.
다섯 번째는 시헌의 친구 만덕이 던진 순수한 질문이다.
시헌아, 너 복싱을 왜 했니?
- 만덕 -
단순하지만 본질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복잡한 현실 속에서 시헌이 잃어버렸던 마음의 방향을 다시 찾게 해 준 한마디였다.
여섯 번째는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시헌이 했던 말이다.
니 지금 무섭제? 근데 무서운 거 그거 맞서 싸워야 이기는 기라. 쫄지 마라!
- 시헌 -
겁을 이겨내야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마지막 대사는 시헌이 선수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정신력의 본질이다.
나한테는 무서운 거, 힘든 거, 그런 거 없다. 나는 내 자신한테 굴복하지 않는다.
- 시헌 -
복싱의 강함은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사였다.
이처럼 영화 속 명대사들은 단순한 대사를 넘어 인물의 마음과 삶의 메시지를 깊이 있게 전달하며, 관객에게도 긴 여운을 남겼다.
3. 관람평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카운트를 보게 되었는데, 큰 기대 없이 시작했다가 예상외의 깊은 여운이 남았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보니 시헌의 감정선이 더욱 이해됐고, 몰입도 역시 높아졌다.
영화는 88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선수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다. 금메달을 따고도 편파 판정 논란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그의 삶은 화려함 뒤에 깊은 상처가 있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한때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교사로 살아가며 상처를 안고 있는 시헌의 모습은 현실적이면서 안타까웠고, 특히 아들에게 금메달을 보여주지 못하는 장면에서는 그의 마음의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하지만 영화는 시헌의 절망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윤우, 환주, 복안을 만나며 잊고 지냈던 열정이 다시 되살아나고, 아이들을 돕는 과정 속에서 시헌은 자신의 상처까지 치유해 나간다. 영화는 복싱이라는 스포츠를 통해 인물의 내면적 성장을 훌륭하게 담아냈다. 경기 장면 하나하나에도 인물들의 사연과 절실함이 배어 있어 단순한 승부 이상의 울림을 준다.
또한 199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당시의 현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더욱 진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IMF 직후의 무거운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물들의 모습이 깊이 와닿았고, 영화가 그려낸 스포츠계의 부조리는 여전히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남겼다.
배우들의 연기는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진선규 배우는 이전의 강렬한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인간적이고 따뜻한 모습을 선보였고, 성유빈과 장동주 배우 역시 풋풋하면서도 묵직한 연기로 극에 진정성을 더했다. 그들의 눈빛과 표정은 실제 복싱 선수 같은 생동감을 전달했고, 관객이 함께 성장의 과정을 경험하도록 만들었다.
카운트는 흔한 스포츠 영화의 틀을 따르면서도 그 속에 진심 어린 메시지와 인물의 성장을 담아내며 관객의 마음을 움직인다. “다운됐다고 끝나는 건 아니다”라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위로였다. 지친 일상 속에서 다시 일어설 힘이 필요하다면, 이 영화를 꼭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0점을 준다. 킬링타임용으로 한 번쯤 볼만한 영화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