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2000년, 용산 미군 기지에서 하나의 무책임한 명령이 내려진다. 미군 장교는 한국인 군의관에게 포름알데히드를 한강에 폐기하라고 지시했고, 군의관은 그 위험성을 경고하지만 장교는 한강은 넓으니 괜찮다는 말로 이를 묵살한다. 그렇게 독극물은 아무런 제지 없이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이 장면은 조용하지만, 이후 벌어질 모든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년 뒤, 한강 둔치에서 낚시를 하던 한 남자는 기이한 생물체를 낚아 올린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큼 이상한 모습이었지만, 그 생물은 곧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사람들은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사건은 기억 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날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전조였다.
한강변에서 작은 매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희봉의 가족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 희봉은 묵묵히 가게를 지키고 있었고, 한량처럼 보이는 아들 강두는 매점 한켠에서 졸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강두의 딸 현서는 고모 남주의 양궁 경기를 보며 투덜대기도 하고, 휴대폰을 사달라며 투정을 부리는 평범한 아이였다. 그들의 일상은 소소했고, 그래서 더 소중해 보였다.

그러던 중, 한강에서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진다. 거대한 괴물이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평화롭던 한강공원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강두는 본능적으로 현서의 손을 붙잡고 달리지만, 넘어지는 순간 손에 잡힌 것은 딸의 손이 아니었다. 현서는 괴물의 꼬리에 낚아채져 그대로 강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눈앞에서 딸을 잃은 강두는 절규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지만, 그는 수영조차 할 줄 모르는 인물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바라봐야 했던 그 순간은, 이후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깊은 상처로 남는다. 곧 희생자들을 위한 합동 분향소가 차려지고, 현서의 사진도 그곳에 걸린다. 가족들은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절망 속에 무너진다.
그때 방역복을 입은 정부 관계자들이 나타나 괴물과 접촉한 사람들을 강제로 격리 시설로 이송한다. 괴물이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면서, 가족들은 감염자 취급을 받으며 병원에 갇히게 된다. 희봉과 강두, 남주와 남일은 아무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 듯 보인다.

그러던 중, 기적처럼 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현서는 아직 살아 있었고, 자신이 큰 하수구 같은 곳에 갇혀 있다고 울먹이며 말한다. 짧은 통화였지만, 그 한마디는 가족들에게 다시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준다. 현서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격리 시설에서 탈출하고, 정부의 수배 대상이 된 채 현서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희봉은 흥신소를 통해 총을 구하고, 네 사람은 하수구를 뒤지며 한강 주변을 헤맨다. 그러다 결국 괴물과 다시 마주하게 되지만, 필사적으로 쏜 총알은 괴물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 도망치던 중, 희봉은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괴물과 맞서다 끝내 목숨을 잃는다.
아버지를 눈앞에서 잃은 가족들은 다시 깊은 절망에 빠지지만, 현서의 목소리는 그들을 다시 붙잡아 준다. 과연 이 평범하고 서툰 가족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 속에서도 현서를 구해낼 수 있을까.
영화는 끝까지 그 질문을 관객에게 남긴다.
2. 명대사
괴물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가 곳곳에 배어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순간들이 이어지며, 그 안에서 인물들의 진짜 감정이 더욱 또렷하게 드러난다.
부모 속이 한 번 썩어 문드러지면 그 냄새가 십 리 밖까지 진동하는 거여.
- 희봉 -
현서를 잃고 서로를 원망하며 무너지는 가족들 사이에서, 희봉이 던지는 이 한마디는 모든 소음을 잠재운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이 얼마나 깊고 오래 가는지를 담담하게, 그러나 너무도 절절하게 표현한 대사였다. 꾸며낸 말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의 입에서 나올 것 같은 진짜 말처럼 들린다.
아… 조국에 몸 바쳤건만, 취직도 안 시켜주고 말야.
- 남일 -
민주화 운동에 몸을 바쳤지만 현실에서는 백수로 살아가는 남일의 푸념은 웃음 속에 씁쓸함을 남긴다. 허세 섞인 말투 뒤에는 좌절과 분노가 담겨 있고, 이 대사는 당시 청년 세대가 느꼈던 허탈함을 그대로 대변한다. 단순한 농담처럼 들리지만,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풍자가 숨어 있다.
그만 좀 투덜거려! 그 시간에 하수구 하나라도 더 뒤져봐 좀!
- 남주 -
지쳐가는 가족들 사이에서 남주가 내뱉는 이 말은 냉정하지만 현실적이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행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대사로, 양궁 선수답게 집중력과 책임감을 지닌 남주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근데.. 사망.. 사망잔데요... 사망은 안 했어요...
- 강두 -
이미 딸이 사망 처리되었다는 말을 들은 상황에서, 강두가 더듬거리며 내뱉는 이 대사는 그의 순진함과 절박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논리도, 말솜씨도 없지만, 그 말속에는 내 딸은 살아 있다는 믿음 하나만이 남아 있다. 이 장면은 강두라는 인물을 가장 잘 이해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이거 마취 주사인가요..? 그럼 이것만 맞고 금방 현서에게 좀 다녀올게요.
- 강두 -
마취 주사를 맞으면 잠시 눈을 붙일 수 있고, 그러면 더 빨리 딸에게 갈 수 있을 거라 믿는 강두의 말은 너무도 순진해서 오히려 가슴을 아프게 한다. 이 대사는 강두의 어리숙함이 아니라, 딸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보여준다.
3. 관람평
영화 괴물은 처음 봤을 때의 충격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깊게 남는 작품이었다. 상영관에서 나올 때는 압도적인 괴물의 비주얼과 한강이라는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이 강하게 기억에 남았지만, 집으로 돌아와 곱씹을수록 이 영화가 진짜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당시 기준으로 봐도 괴물의 CG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한강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은 단순히 크고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그곳 어딘가에 숨어 살고 있을 것처럼 생생했다. 움직임은 기괴했고, 축 늘어진 몸과 어설픈 듯하면서도 위협적인 행동은 기존 괴수 영화에서 보던 괴물과는 전혀 다른 인상을 남겼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디테일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였고, 그 덕분에 영화 초반부터 관객은 현실과 영화의 경계를 쉽게 잊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 완성도 높은 괴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괴물은 분명 사건의 계기이지만, 영화는 끝까지 그 괴물과 싸우는 영웅의 서사를 선택하지 않는다. 대신, 그 괴물 앞에서 아무 힘도 없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어딘가 모자라고, 서툴고, 늘 한 발씩 늦는 사람들. 그들은 결코 멋있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실수를 반복한다. 그렇기에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더 마음 아프게 다가온다.
강두는 전형적인 실패한 가장처럼 보인다. 책임감도 부족해 보이고, 상황 판단도 늘 어긋난다. 하지만 그가 딸을 향해 보이는 감정만큼은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말은 어눌하고 행동은 엉성하지만, 현서를 향한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진실하다. 그 순진함과 무능함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관객이 그를 끝까지 외면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버지 희봉은 이 가족의 중심축이다. 무능해 보이는 자식들을 꾸짖으면서도, 결국 가장 먼저 몸을 던지는 사람이다. 총을 들고 괴물 앞에 서는 그의 모습은 영웅적이라기보다는 처절하다. 그는 괴물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도, 대책도 없이 그저 가족을 먼저 살리기 위해 남는다. 그 장면은 괴수 영화에서 보기 힘든, 너무도 인간적인 선택이었고, 그래서 더 깊은 슬픔을 남겼다.
남주와 남일 역시 완벽하지 않다. 국가대표 양궁 선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흔들리는 남주, 사회에 대한 불만만 가득한 채 현실에 발붙이지 못한 남일. 이들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좌절한 인물들이지만, 현서를 구하기 위한 여정에서는 결국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봉준호 감독은 이 가족을 통해, 우리가 흔히 ‘평범하다’고 부르는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태로운지를 솔직하게 보여준다.
영화 속 사회 비판은 노골적이면서도 날카롭다. 미군 기지의 독극물 무단 방류,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 근거 없는 바이러스 공포로 사람들을 통제하는 모습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라, 당시 한국 사회가 안고 있던 불신과 분노를 그대로 담아낸다. 괴물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무책임과 무관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것은 괴물이 아니라, 괴물을 만들어놓고도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는 시스템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끝까지 무겁기만 하지는 않다. 비극 한가운데서 터져 나오는 블랙 코미디는 봉준호 감독 특유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웃음이 나오는 순간에도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 웃음이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웃고 난 뒤 더 크게 다가오는 슬픔, 그것이 괴물이 가진 정서적인 힘이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결국 가장 오래 남는 것은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가족의 얼굴이다. 완벽하지 않고, 늘 실패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이 영화는 거대한 괴수를 통해 가족이라는 가장 작고 연약한 공동체의 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힘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괴물보다도 오래 기억에 남는다.
괴물은 단순한 괴수 영화가 아니다. 사회에 대한 질문이자,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가 얼마나 쉽게 무책임해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 다시 봐도 여전히 유효하고,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영화사에서 오래 남을 수밖에 없는 명작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평점은 5점 만점에 4.7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