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기택과 충숙, 아들 기우와 딸 기정은 반지하에 옹기종기 모여 살면서도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들의 삶은 언제나 궁핍했다. 무료 와이파이를 찾아 스마트폰을 들고 동네를 헤매는 것이 일상이었고, 피자 박스를 접는 아르바이트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장마철이면 어김없이 들이닥치는 빗물에 잠기는 집은 그들의 곤궁한 처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들은 불평하기보다 오히려 특유의 유머와 낙천적인 태도로 서로를 다독이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어느 날, 기우의 친구 민혁이 뜻밖의 제안을 들고 찾아왔다. 자신이 과외를 하던 박 사장네 고등학생 다혜의 과외 자리를 기우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었다. 부잣집이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기우는 주저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가짜 대학 재학 증명서를 위조하고, 면접을 보러 간 기우는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박 사장과 사모님 연교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고, 그렇게 박 사장네 과외 선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기우는 한 술 더 떴다. 동생 기정을 박 사장네 막내아들 다송의 미술 치료사로 위장 취업시키는 기발한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 계획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기정은 다송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박 사장 부부의 신뢰까지 얻어냈다.
이어서 기우 남매는 치밀한 계략으로 기존의 운전기사를 해고시키고 아버지 기택을 그 자리에 앉혔다. 마지막 퍼즐은 어머니 충숙이었다. 박 사장네 가정부를 교묘하게 쫓아내고, 충숙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만들면서 기택의 온 가족은 마치 기생충처럼 박 사장네 집에 완벽하게 스며들었다. 그들의 지하 세계는 이제 박 사장네 고급 주택의 화려한 지상 세계와 교묘하게 연결되는 듯 보였다.

박 사장 가족이 캠핑을 떠난 날, 기택의 가족은 마치 자신들의 집인 양 호화로운 저택에서 흥겨운 잔치를 벌였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미래를 이야기하는 그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바로 그때, 예상치 못한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해고당했던 전 가정부 문광이었다. 그녀는 이 집에 두고 온 물건이 있다며 다급하게 들어오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문광의 얼굴에는 뭔가 숨기는 듯한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문광이 향한 곳은 주방 뒤편의 굳게 닫힌 문이었다. 기택의 가족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가운데, 문광은 벽을 밀었고, 놀랍게도 그 뒤에는 숨겨진 지하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문광의 남편 근세가 무려 4년 동안이나 박 사장네 지하실에 숨어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진실은 기택 가족의 완벽했던 계획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박 사장 가족이 캠핑에서 예상보다 일찍 돌아오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택의 가족과 문광 부부, 그리고 박 사장 가족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결국 생존을 건 처절한 대결이 벌어졌다. 이 대결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았고, 영화는 충격적인 비극 속에서 막을 내렸다.
2. 명대사
가장 완벽한 계획이 뭔지 알아? 무계획이야.
- 기택 -
기우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계획의 중요성을 역설할 때, 아버지 기택은 의외의 한 마디를 던졌다. "계획을 세우면 반드시 어긋나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가장 완벽한 계획은 그냥 무계획이야." 그의 말은 언뜻 체념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뼈아픈 현실 인식을 담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뀌지 않는 가난의 굴레 속에서, 계획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처절한 자조였던 것이다. 이 대사는 영화 전반에 흐르는 계급 사회의 견고한 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가난한 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을 담고 있었다. 기택의 이 말은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의 서늘한 복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냄새가 선을 넘지.
- 박 사장 -
박 사장이 무심코 내뱉은 이 한 마디는 기택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는 빈곤층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언급하며, 자신과 기택 가족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계급적 거리를 명확히 그었다. 이 대사는 단순한 후각적 표현을 넘어, 부자와 빈자 사이에 존재하는 넘을 수 없는 사회적, 심리적 장벽을 의미했다.
박 사장에게는 그저 불쾌한 냄새였겠지만, 기택에게는 자신과 가족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모멸감으로 다가왔다. 이 '냄새'에 대한 언급은 후반부 영화의 비극적인 클라이맥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했다.
부자니까 착한 거야.
- 충숙 -
사모님 연교의 순진하고 다소 어리숙한 모습을 보며 충숙이 내뱉은 이 대사는 섬뜩할 정도로 현실을 꿰뚫는 통찰을 담고 있었다. "연교 사모님이 착해 보이는 건, 그냥 부자니까 그런 거야. 돈이 많으니 굳이 악착같이 살 필요가 없어서 착해 보이는 거지." 그녀의 말은 경제적 여유가 도덕성을 좌우할 수 있다는 냉혹한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
연교의 '착함'은 본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기보다, 그녀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가 만들어낸 일종의 허울 좋은 이미지였던 것이다. 이 대사는 빈곤과 부유함이 인간의 성격과 도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하며, 계급 사회의 잔인한 진실을 폭로하는 듯했다.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 기정 -
기정이 자신을 부잣집 가정교사로 위장하기 위해 흥얼거린 이 짧은 노래는 영화 속 블랙코미디의 정점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간결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이 노래 한 소절은 복잡한 거짓말을 단순하고 유쾌하게 포장하는 마법 같은 주문처럼 작용했다.
기정의 능청스러운 연기와 함께 어우러진 이 '제시카 송'은 거짓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현실로 둔갑하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이면에 숨겨진 비극적인 상황을 더욱 부각시키는 역설적인 효과를 냈다. 이 노래는 가난한 자들이 생존을 위해 얼마나 기발하고도 처절한 가면을 써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3. 관람평
영화 기생충은 그저 그런 오락 영화가 아니었다. 빈부 격차라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상처를 날카롭게 도려내면서도, 블랙코미디와 스릴러, 사회 드라마를 넘나드는 장르적 변주로 관객의 몰입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단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은 공간을 활용한 연출에 있어서도 탁월한 재능을 보여주었다. 반지하라는 최하층 공간과 박 사장네 고급 주택의 화려한 지상 공간,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계단과 숨겨진 지하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계급과 삶의 양식을 상징하며, 사회적 격차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였다. 특히 폭우가 쏟아지는 장면에서의 대비는 압권이었다. 가난한 자들의 반지하 집이 빗물에 잠겨 아수라장이 될 때, 부유한 박 사장네는 비가 걷히자 맑아진 공기와 햇살을 만끽하며 감탄하는 모습은 계급 간의 극명한 현실 차이를 서늘하게 보여주는 명장면이었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완벽에 가까웠다. 송강호는 현실에 대한 냉소와 함께 가족을 지키려는 가장의 애환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의 눈빛 하나, 표정 하나에 가난의 무게와 삶의 비애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조여정은 순진하고 다소 어리숙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은근한 계급 의식을 가진 부잣집 사모님 연교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연기해냈다. 그녀의 천진난만한 웃음 뒤에 숨겨진 계급적 편견은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최우식, 박소담, 이정은, 박명훈 등 다른 배우들 역시 각자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녹아들어 영화의 밀도를 높였다.
기생충은 단순한 영화를 넘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부와 가난, 상류층과 하류층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한 번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물론이거니와, 이미 감상했던 사람이라도 다시 보면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는 수작이었다. 혹시 아직 기생충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이 영화가 선사하는 강렬한 메시지와 전율을 직접 느껴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개인적인 평점으로는 5점 만점에 4.7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