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부산의 한 세관에서 근무하던 최익현은 대단할 것 없는 비리 공무원이었다. 뇌물을 받아 밀수를 눈감아주는 소소한 부정부패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던 인물이다. 어느 날 평소처럼 뒷돈을 챙기던 중 상부에 적발될 위기에 몰리게 된다. 벼랑 끝에 몰린 익현은 압수 물품 창고에서 히로뽕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을 경찰에 넘기기보다는 직접 팔아 한몫 챙길 계획을 세운다. 그는 동료들에게 일본에 팔아 애국하는 것이라는 황당한 논리를 내세워 설득한 뒤, 부산 최고의 조직폭력배 최형배를 찾아간다.
익현은 형배를 만나자마자 족보를 따지기 시작한다. 같은 최 씨 집안임을 확인한 뒤 스스로를 고손자 뻘 윗사람이라 주장하며 기선 제압에 나선다. 형배는 이런 태도가 못마땅해 부하들에게 익현을 끌어내라 지시하지만, 익현은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형배의 집까지 찾아가 그의 아버지 앞에서 족보를 들이밀며 자신을 집안의 큰 어른처럼 포장한다. 결국 형배는 고개를 숙이게 되고, 익현을 대부라 부르며 조직 내에 소개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히로뽕 거래를 시작으로 점점 사업을 확장해 나간다. 익현은 세관원으로 쌓아온 인맥을 활용하고, 형배는 조직의 힘을 앞세워 부산 전역을 장악해 나간다. 그러던 중 조 계장이 자신의 비리를 익현에게 덮어씌우려 하자, 익현은 교묘하게 판을 짜 형배의 부하 창우가 조 계장을 응징하도록 유도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형배는 익현을 단순한 친척 어른이 아닌,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대부로 인식하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진다.

성공은 계속된다. 우연히 사우나에서 만난 허삼식의 부탁으로 나이트클럽 사업에까지 손을 뻗게 된다. 나이트클럽을 차지하기 위한 명분을 찾던 중, 그곳을 장악하고 있는 인물이 과거 형배의 부하였던 김판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배는 판호를 찾아가 자신이 더 큰 조직임을 내세우며 운영권을 요구한다. 판호가 수익 분배를 제안하지만 형배는 이를 단칼에 거절하며 자존심을 건드리고, 결국 상황은 폭력으로 치닫는다. 형배는 판호를 무참히 폭행하며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은 유치장에 끌려가게 된다. 전과가 없던 형배는 곧 풀려나지만, 전과가 많은 익현은 혼자 남겨진다. 익현은 자신의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형배를 풀어주고, 이 일로 형배는 익현에게 깊은 신뢰와 감사를 품게 된다. 두 사람은 마침내 부산 범죄 세계의 정점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익현이 가진 사업 외적인 인맥은 점점 형배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여기에 익현의 사위와 형배의 부하 창우 사이의 갈등이 더해지며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형배는 창우의 편을 들고, 익현은 이를 불편하게 받아들인다. 그 틈을 노려 나이트클럽을 빼앗긴 판호가 복수를 준비한다. 익현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형배는 힘으로 끝내려 한다. 결국 판호가 형배를 도발하며 익현의 아래 아니냐고 말하자, 형배는 격분해 자신은 누구의 밑도 아니라 외친다. 이 장면을 목격한 익현과 형배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지고 만다.
형배는 익현을 떠나고, 버림받은 익현은 판호와 손을 잡는다. 익현의 인맥과 판호의 조직력이 결합되며 사업은 다시 번창하지만,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모든 판이 뒤집힌다. 대대적인 범죄 소탕이 시작되고 익현 역시 수사 대상이 된다. 그는 과거처럼 인맥으로 빠져나가려 하지만, 새로 부임한 조 검사는 이전과 달랐다. 조 검사는 익현을 이용해 형배와 판호를 동시에 잡으려 하고, 익현은 결국 다시 체포된다.
끝없는 욕망과 배신 속에서, 과연 최익현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2. 명대사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오래도록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현실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듯한 대사들 때문이다. 이 영화의 말들은 멋을 부린 문장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숨결과 사고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특히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나는 말들은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맥 중심 문화와 권력 구조를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명대사들을 하나씩 되짚어본다.
내가 인마 느그 서장이랑 인마! 어저께도 으!! 같이 밥묵고 으!! 싸우나도 같이 가고 마!!
- 최익현 -
이 대사는 최익현이라는 인물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단번에 보여준다. 그는 법이나 원칙보다 사람과 관계를 먼저 내세운다. 누구를 알고 누구와 친한지가 곧 힘이 되는 세상에서, 익현은 그 방식을 누구보다 능숙하게 활용하는 인물이다. 이 대사는 단순한 허세처럼 들리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실제로 통하던 논리였기에 더욱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능청스러운 말투 속에 깔린 권력의 구조가 씁쓸하게 느껴지는 명장면이다.
마 불 함 붙이봐라
- 최형배 -
형배의 이 한마디는 짧지만 묵직하다. 불을 붙이라는 말속에는 협상도 타협도 없다는 선언이 담겨 있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인 인물,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온 깡패의 세계관이 응축된 대사다. 이 장면에서 형배는 상대를 바라보며 단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다. 그 침착함과 위압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숨을 죽이게 만든다. 진짜 힘을 가진 자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
- 조 검사 -
이 짧은 질문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냉혹한 대사 중 하나다. 익현이 그토록 자랑하던 인맥과 배경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대면 모두가 알아줄 것이라 믿던 세계는, 법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이 대사는 조용히 증명한다. 화를 내지도 위협하지도 않지만, 그 어떤 폭력보다 강력한 한마디였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권력의 실체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장면이다.
깡패가 말이야 깡패 짓을 해야지 왜 사기를 치고 다니노?
-김판호 -
판호의 이 대사는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다. 그는 익현의 방식에 대한 깊은 불신과 경멸을 동시에 드러낸다. 조직의 세계에도 나름의 룰과 질서가 있는데, 익현은 혈연과 말장난으로 그 판을 흔들어 놓는다. 판호에게 익현은 같은 편이면서도 가장 믿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이 대사는 깡패 세계조차도 지키려는 최소한의 질서가 있음을 보여주며, 익현의 존재가 얼마나 이질적인지를 강조한다.
대부님은 말이다... 깡패가 아니잖아!
- 최형배 -
이 대사는 익현과 형배의 관계가 완전히 뒤집히는 순간을 상징한다. 그동안 형배는 익현을 존경하며 대부로 떠받들어왔다. 하지만 이 한마디와 함께, 익현이 쌓아온 권위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형배는 스스로가 조직의 중심이며, 힘의 주체임을 선언한다. 인맥으로 쌓은 권력은 결국 폭력 앞에서 무력하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버지, 이 돈은 평생 못쓰는 돈입니다.
- 최익현 -
이 대사는 영화 후반부에서 가장 씁쓸하게 다가온다. 그토록 원하던 성공과 부를 손에 넣었지만, 그것이 결국 아무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익현 스스로 인정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말속에는 후회와 체념, 그리고 자식에게만큼은 같은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범죄와 성공의 허무함이 조용히 스며드는 대사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마다 나는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했었다.
- 최익현 -
익현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영화 전체를 정리하는 고백과도 같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잘못 살았다고 크게 외치지 않는다. 다만 지나온 선택들을 하나씩 떠올리며 조용히 후회한다. 이 담담함이 오히려 더 큰 여운을 남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비슷한 후회를 해봤기에, 이 말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3. 관람평
범죄와의 전쟁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선 충격에 가까웠다. 조폭 영화라는 장르적 기대를 안고 봤지만, 영화는 그 틀을 훌쩍 뛰어넘어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들춰냈다. 이 작품은 폭력보다 관계를, 총보다 말을 더 무서운 무기로 그려낸다. 그래서 더욱 현실적이고 섬뜩하다.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은 이 영화의 핵심이자 상징이다. 그는 악인도 영웅도 아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물이며, 기회가 오면 붙고 불리하면 빠지는 전형적인 현실형 인간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를 미워하면서도 동시에 이해하게 된다. 최민식은 익현의 비굴함과 영악함을 과장 없이 표현하며, 이 인물이 실제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정우의 최형배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인상적이다. 그는 힘과 폭력을 신봉하지만, 동시에 인정 욕구가 강한 인물이다. 익현을 대부로 모시며 자신보다 위에 있는 존재를 필요로 했던 그의 모습은, 조직폭력배라는 외피 속에 숨겨진 불안함을 드러낸다. 하정우의 연기는 거칠면서도 섬세했고, 형배라는 캐릭터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인간적인 존재로 완성시켰다.
조연 배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김성균의 창우, 조진웅의 조 검사, 곽도원의 존재감은 영화의 균형을 단단히 잡아준다. 특히 조 검사는 인맥과 폭력으로 움직이던 세계에 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영화의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간다.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수행하며 이야기를 밀도 있게 만든다.
스토리는 범죄 누아르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매우 한국적이다. 혈연과 지연, 학연으로 얽힌 관계망 속에서 권력이 어떻게 생성되고 무너지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영화의 결말은 통쾌하기보다는 씁쓸하다. 누구도 완전한 승자가 되지 못한 채, 모두가 각자의 욕망에 의해 무너진다. 이 점이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을 높인다.
범죄와의 전쟁은 단순히 재미있는 영화를 넘어, 한국 사회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다. 웃다가도 불편해지고, 통쾌하다가도 씁쓸해진다. 시간이 지나 다시 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는 이유다.
개인적인 평점으로는 5점 만점에 4.4점을 준다.